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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4.05.13) 주간경향, [시민사회 히든챔피언]"신용불량자가 아닌 금융피해자"
작성일 2018.01.09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7,024

[시민사회 히든챔피언]"신용불량자가 아닌 금융피해자"

(2014.05.13.주간경향)

 

해오름’이란 이름에는 금융 피해와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나자는 뜻이 담겨 있다.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을 채무자라 부른다. 채무자 중에서도 오랫동안 빚을 갚지 못해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신용불량자가 된다. 채무자, 신용불량자들의 모임인 ‘해오름’은 ‘금융 피해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빚을 지게 된 개인의 잘못뿐만 아니라 채무를 조장하는 정부 정책과 금융자본의 약탈적 대출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오름의 상근 활동가인 임재원씨(59)는 “금융 피해자들이 정상적으로 직장에만 다녔어도 지금처럼 채무자가 됐을지 의문”이라며 “사회적 모순점을 놔두고 개인의 책임에만 주목하는 것은 빈곤층을 그냥 묻어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금융 피해자들이 좀 더 떳떳하게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용불량자라고 해서 기본권이 제한돼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도 일할 권리가 있고, 법적으로 보장된 파산면책 제도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해오름의 모태는 외환위기 10주년인 2007년에 세워진 파산학교다. 파산학교는 홈리스행동, 이윤보다인간을 등 빈곤문제 관련 시민단체들이 금융 피해자들에게 개인파산 등을 통해 새 삶을 살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이듬해인 2008년, 파산학교에 모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 보자”며 만들어진 게 해오름이다. 2014년 현재 약 5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단체명의 유래에 대해 임재원씨는 “금융 피해와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나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해오름 회원들은 매월 한 차례 서울 용산구의 사무실에서 정기 모임을 갖는다. 해오름 회원들은 실직과 가정파탄, 외로움과 빈곤 등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정기 모임에서 회원들은 개인파산 정책을 공부하고, 실제 개인파산 소송과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상근 활동가 임재원씨 역시 긴 시간을 ‘신불자’로 살아 왔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임씨는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서 대기발령 조치를 당했다. 회사의 자금 흐름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무실 책상마저 사라진 유령이었던 임씨는 버티다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를 나왔다. 하지만 이미 40줄에 접어든 임씨가 안정적 일자리로 재취업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신용카드로 가족의 생계비를 대는 일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신용불량에 빠졌다. 가정불화 끝에 아내와 자식은 그의 곁을 떠났다. 2007년 파산학교에 오기 전까지 임씨는 수년간 길거리를 전전해야만 했다.

임씨는 “외환위기가 지나가고 난 뒤 대기업들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밑에 있던 영세 사업자나 노동자들은 다 쓰러졌다. 한 번 제도권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해오름은 다른 시민단체들과 공동으로 금융 피해자들의 빚을 직접 탕감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오름 등 시민단체들이 소속된 금융소비자네트워크는 지난 4월 14일 ‘빚 제로 다시살기 운동’을 선포하며 장기 연체채권 4억6700여만원어치를 없애는 행사를 벌였다. 면제 대상은 기초생활 수급자, 중증 장애인 등 취약계층 119명이었다. 직장인에겐 한두 달 월급에 불과한 400여만원을 10년 넘게 갚지 못해 고통 받아온 사람들이다.
 
임씨는 “4억여원의 부실채권을 사는 데 들어간 돈은 3%도 안 되는 1300만원밖에 안 되는데 채권자들은 ‘원금 갚으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는다”며 “몇백만원도 갚을 수 없는 금융 피해자들의 경우 무상으로 채무를 탕감하거나, 부실채권의 가치에 해당하는 원금의 3~4%만 갚게 하는 등 획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201405021654261&pt=nv#csidxc64fd4b4f49de5aa4cd23893735642f